서평

[서평] 어디서 살 것인가 - 유현준 : '내'가 사는 곳이 아닌 '우리'가 사는 곳을 위해

0cold 2020. 8. 22. 22:03

 

어디서 살 것인가 - 유현준 지음

 

 

"어디서 살 것인가?"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올랐는가?

 

단순히 지금 살고 있는 ‘집’ 혹은 미래에 살게 될 ‘집’이 떠올랐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어디서 살다’ 라는 말을 너무 좁게 해석한 것이다.

 

우리는 하루의 3분의 1의 시간을 ‘집’에서 생활하긴 하지만, 나머지 3분의 2의 시간동안 우리는 ‘직장’에서, ‘학교’에서, ‘도시’에서, ‘거리’에서 살아간다.

 

저 질문을 접했을 때 오로지 ‘집’ 생각밖에 나지 않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우리는 내 것‘집’이외에 내 것이 아닌 건축물, 그리고 공간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디서 살 것인가" 란 질문을 접했을 때, 사는 곳 = 내 집’ 이란 수식이 가장 처음 떠오른 것이다.

 

사실 우리는 내 것인 ‘집’ 말고도 내 것이 아닌 '여러 공간'에서 살아가는 데도 말이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 중에 “어? 나는 아닌데? 집 말고도 다른 것들도 떠올랐는데?” 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에겐 ‘사는 곳 = 내 집’ 이였다.

 

그렇기에 내가 처음 “어디서 살 것인가”란 책의 제목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의 꿈의 집이였다.

 

직장이 생겨 돈을 벌어 처음으로 내가 살 집, 그리고 은퇴 후 남은 인생을 보낼 집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 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이 책에선 ‘집’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보다는 여러 건축물, 공간, 그리고 건축의 요소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주변 환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말이다.

 

 


 

 

여러분은 평소 주변환경에 주의를 기울이는 편인가?

 

'나' 또는 '내 것'을 중심으로만 생각하여 '내 것이 아닌' 주변을 자세히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있지는 않는가?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렸고, 건물들이 끊임없이 들어섰다.

 

하지만 이렇게 커진 도시의 공간들 중 '내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다행히 교통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예전보다 더욱 더 많은 공간들을 함께 이용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비록 그것들은 내 것이 아니지만, 내 것이 아니다 라는 이유로 그러한 공간들에 대한 관심없이 주변으로 밀어 넣기에는 우리는 하루의 너무 많은 시간을 그 공간들에서 살아간다.

 

<어디서 살 것인가>란 책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내 것'이 많지 않은 도시에서 살아가며 '내 것이 아닌' 공간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어색한 사람들 말이다.

 

이제는 '내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것'에 집중해보는 것이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의 올바른 모습이지 않을까?

 

 

 


 

 

 

이 책이 내게 영향을 끼쳤던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영향을 받은 부분은 크게 2가지이다.

 

 

첫번째로, 건축의 목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이제껏 단순히 건축은 봤을 때 멋있어 보여야 하고 용도에 충실해야 한다고만 생각해왔다.

 

이 둘만 갖추어도 의미있는 건축이고 목적을 달성했다 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미적으로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감과 놀라움을 안겨주므로 그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할 수 있다.

 

또 예를들어, 사람이 사는 집이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안식처의 용도를 충실히 수행하고, 일을 하고 있는 회사의 건물이 업무에 효율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면 그 건축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건축은 단순히 미적, 실용적 목적을 띠는 것 이상의 역할을 수행해야한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건축물의 진정한 의미는 건축물이 사람과 맺는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 p.5 여는글 中

 

건축물은 인간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건축물은 인간에게 여러방면으로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에 건축은 미적, 실용적 목적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함께 수행해야한다.

 

한 예로, 이 책의 초반부는 우리나라의 학교 건축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우리나라 학교 건축의 문제점을 집어냄과 동시에 해결책 또한 제시한다.

 

그 해결책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천장의 높이가 낮은 곳보다 천장이 높이가 높은 곳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더 많이 나온다.

 

1,2층 저층 주거지에 사는 사람들은 고층 주거지에 사는 사람보다 친구가 세 배 많다. 그렇기에 건물은 저층화 될 필요가 있다.

 

건물은 자연 친화적이어야 한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건축의 목적에는 미적이고 실용적인 것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두번째로, 이 책을 통해 나는 내 주변의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 용인으로 이사를 온 후, 이곳에서 지금까지 거의 20년째 살고 있다.

 

여러 건물들이 새로 생기고 주변 경관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 동네의 건물 혹은 공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주변 건물, 공간이 나에겐 너무도 당연해, 특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난 후 동네 주변을 둘러보니 전에는 당연하게만 여기던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1. 내가 다녔던 학교에 대해 생각해봤다.

 

흙 운동장이였을 때는 축구를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의 전유물이던 운동장이 잔디가 깔리자 점심시간에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나와 운동장을 산책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2. 우리집 뒷편에 있는 작은 봉우리의 산책길을 생각해봤다.

 

저녁에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우리는 소화를 시키기 위해 선선한 바람이 부는 산책길로 향하곤 한다.

 

3. 어렸을 때 종횡무진 활약했던 여러 놀이터들과 나와 내 친구들만 알던 우리만의 아지트에 대해 생각해봤다.

 

어린시절 우리만의 공간을 찾아 나섰던 모험심 넘치는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4. 집을 나서 20분을 걸어가면 나오는 '탄천'이라는 강에 대해 생각해봤다.

 

아파트가 빽뺵한 우리동네에 한 줄기의 자연을 선사하는 우리 모두의 고마운 공간이다.

 

 

이렇게 곰곰이 내가 살아왔던 공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니 장점이라고는 없을 것만 같던 내 주변의 공간들이 의외로 자기만의 개성과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익숙함에 속아 그 안에 녹아있는 장점을 발견하지 못한 내 자신을 반성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의 '마무리하는 글'에서 작가는 “세상을 더 화목하게 만들기 위해” 건축을 한다고 말한다.

 

제대로 설계된 공간은 갈등을 줄이고 그 안의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고, 건물 안의 사람과 건물 주변의 사람 사이도 화목하게 하고, 사람과 자연 사이도 더 화목하게 한다. 좋은 건축은 화목하게 하는 건축이다.” - p.370

 

또, 저자는 건축은 건축가만의 역할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건축은 건축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세상을 더 화목하게 하는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건축을 조금씩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 p.370

 

평소 주변 건축과 공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세상을 더 화목하게 하는 건축물을 만드는 첫 걸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가 사는 곳이 아닌 '우리'가 사는 곳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