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택시 기사님에게 한 방 먹은 썰
요즘 세상이 왜 이러지?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일주일 전의 일이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술에 많이 취한 친구를 데려다 주기 위해 택시를 잡아탄 후 학교 기숙사로 향하던 길이였다.
돈이 넉넉치 않은 대학생들이라 기숙사 앞까지 곧장 가기보단 학교 후문에 내려서 걸어갈 생각이였다.
계산을 마치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 때 그 술에 취한 친구가 휴대폰이 없어졌다고 했다.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택시기사님이 받으셨다. 택시는 이미 떠난 후였다.
택시기사님은 지금 다른 손님을 태우러 갔으니 10분만 기다리라고 하셨다.
10분을 넘어 30분 가까이 돼서야 기사님이 오셨다. 다른 손님을 받으셨다고 했다.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은 우리의 잘못이니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에 학교 후문에서 기숙사까지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다시 택시에 오른지 30초 정도 됐을까. 미터기를 봤더니 13000원이 찍혀 있었다.
30초에 만3천원이라니.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하고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여전히 미터기는 만3천원에서 계속 오르고 있었다.
너무나 이상해서 기사님께 여쭤봤더니 기사님은 버럭 화를 내셨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러 와줬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나도 학생에게 이러고 싶지 않아”
“다른 기사들은 이거 보다 더 해”
“나도 회사 사납금 내야 돼”
“…”
이쯤 되면 상황파악이 다 되었으리 라고 생각하고 그 후의 일에 대해서는 구태여 보태지 않겠다.
기사 아저씨의 사납금 얘기가 공감이 되면서도 기사 아저씨도 우리 또래의 아들, 딸이 있을텐데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억울했지만 아저씨의 사정을 계속 공감해드리자 어느덧 높았던 목소리는 점차 낮아지고 부드러워졌고 오히려 우리에게 미안해하는 감정이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이제 됐다.’ 라고 생각하고 ‘잘 마무리하고 타고 온 비용만 드리자’ 라고 말을 꺼내려는 찰나, 조수석에 타고 있던 또 다른 친구가 카드를 기사아저씨께 건냈고 아저씨는 단말기에 카드를 긁었다.
‘네가 그걸 왜 내냐’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이 때문에 다시 아저씨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아서 나도 그냥 말없이 문을 열고 택시에서 내렸다.
술에 취한 친구를 기숙사까지 데려다 주고 각자 집으로 헤어질 때까지 그 친구와 나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당했다’는 억울함과 ‘세상이 왜 이럴까’ 라는 허무함, ‘택시 기사 아저씨는 무엇 때문에 저렇게까지 했을까’ 라는 의문, 그리고 기사님이 그렇게까지 하게끔 방관하는, 아니 오히려 부추기는 ‘사회 구조’에 대한 분노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동안 택시기사의 삶을 옥죄어 왔던 사납금 제도가 올해 1월1일부터 서울 폐지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택시기사님의 “나도 사납금 내야 돼” 넋두리의 진실은 무엇이였을까?
택시 회사들이 법을 아직 제대로 안 지키는 것일까? 아니면 택시기사님이 거짓말을 하신 걸까?
이 문제를 떠나 세상은 왜 이럴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 사건 이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일만 생각하면, 우울함과 무력감을 느낀다.
중증외상센터의 암울한 현실을 다룬 이국종 교수님의 <골든아워1>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세상이 왜 이럴까요?”
“원래 세상은 이런 거예요.”